
한국 콤퓨타 산업 100대 이야기(39)- ' 일상생활로 깊게 파고든 퍼스널 컴퓨터'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급팽창 기로에 선다. 70년대가 컴퓨터에 대한 무지가 보편적인 시기였다면, 80년대 초는 기업에서 사무자동화의 일환으로 컴퓨터를 인식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그러던 것이 83~84년을 기점으로 교육용P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 일반 가정 생활용품으로 PC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머니는 물론이고 미술학원이나 음악학원에 다니던 아이들도 새로운 컴퓨터라는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때를 맞추어 각 회사들은 시골장터에서 약장사가 만병통치약을 팔 듯 앞을 드투어 '만능컴퓨터'의 선전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컴퓨터를 한 대 사다 놓으면 가계부 정리도 척척, 아이들 성적도 쑥쑥 올라가리라는 생각에 너도 나도 컴퓨터를 들여놓는 집이 늘어갔다.
실제로 84년 10월말 업체별 판매대수를 보면 금성 2만6천대, 삼성 2만5천대, 대우 1만5천대, 삼보 7천대를 비롯해 전체 8만6천대로 집계됐다. 12월까지 판매 수치는 10만대. 전자공업진흥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83년 5만3천대에 비해 2배 정도 성장한 것으로, PC 시장이 계속 신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물론 PC산업 성장 과정에서 초기의 폐단들도 불거져 나왔다. 과대 선전이나 채산성 이하의 판매 단가로 일부 대기업은 적자폭이 30~70억원에까지 달했는가 하면 '무조건 팔아놓고 보자'는 식의 실적 위주 판매로 사후교육이나 유지보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쏟아졌다. 또 소비자들은 막상 컴퓨터를 구입했지만 활용이 기대 이하이고 활용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면서 컴퓨터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퍼스널컴퓨터 이용자모임'이 발족하는 등 퍼스널 컴퓨터 이용자의 혼란을 방지하고 컴퓨터 마인드 수준을 제고시켜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시키려는 다양한 활동이 전개됐다. 시기적으로 컴퓨터 마인드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라 가입 회원은 20~30명에 불과해 운영상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퍼스널 컴퓨터 이용 기술과 방법 지도 및 전파 △소프트웨어 개발촉진 및 유통구조 활성화 △이용자간에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망의 활용 △프로그래밍 기법 교육 △퍼스널 컴퓨터 이용자의 상호이익과 발전을 모색하는데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이외 큐닉스에서 주관하는 MSX 클럽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발족 4개월만에 가입 회원이 4백명에 달하는 등 인기를 구가한 MSX 클럽은 매월 뉴스레터 발행에 이어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며 사용자 모임에 열기를 더했다.
한편 컴퓨터 열풍은 자연 KIECO(국제 컴퓨터·통신기기 및 로봇 전시회)같은 정보통신 전시장으로까지 이어져 장사진을 이루었다. 82년부터 시작된 KIECO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파의 행렬이 더해졌고, 어린이컴퓨터 강좌는 만원을 이루어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했다.
<사진설명: 1980년대 퍼스널컴퓨터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각 가정마다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해 게임이나 오락을 즐기곤 했다, 동아일보 1984년 4월 18일자>